윤대녕의 「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」읽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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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1-04 06:10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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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. 그러나 그것은 뼈아픈 사실에 속한다. `나는 누구인가` 그러나 그것에 쉽게 답할 수 있다면 십 중 팔구 섣부른 것이거나 무모한 것이리라. 우리 뒤엔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져 흉물스러운 욕망이라는 공룡이 우리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으며, 영원히 녹슬 줄 모르는 일상이라는 시퍼런 칼날이 우리의 등 뒤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란, 모든 견고했던 것들이 마치 용암처럼 흐믈흐믈 녹아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이를 굳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대면케 될 벼랑의 모습이라고 규정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.
사라진 이념에 대한 그리움과 형이상학적 질병을 가장한 `후일담`식의 문학적 형태는 이미 `나는 누구인가`라는 궁극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…(skip)
나라는빨간도깨비의정






윤대녕의 「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」읽기
본 자료는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읽고 작성한 독서 감상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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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포트/감상서평
본 자료(data)는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읽은후 작성한 독서 感想文입니다. 계급 혹은 계층성이라는 사회학적 좌표 위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달랬다. 그 위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으로, 하여 그 환상은 어떤 현실도 압도할 수 있었다. 이 말은 투항주의적 언사임이 분명하다. 나와 적은 선명하게 구별되었으며, 선명한 적의 뒤편에 history(역사) 가 未來가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.
물상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가를 묻는 것은 사라져가는 시대를 주시하면서 내뱉는 푸념조의 넋두리 외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따 그러나 `지금 그리고 바로 이곳`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, 그리고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은밀하고도 도발적인 의구심이 발동한다면 그건 단순한 푸념조의 넋두리가 아닐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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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굉장했던 시대가 한 순간에 슬픈 미망처럼 사라져 간다. `나란 누구인가`라는 질문처럼 그렇듯 투명하고 자명한 것은 없었다. 환상을 달리 열정이라고도 신념이라고도 해도 무방하다. 이념이라는 강렬한 태양이 아버지의 근엄한 초상처럼 우리의 뒤를 응시하고 있었기에 또한 가능했다..
다시 물어야 한다. 역설적이게도 그 현실이 모질면 모질수록 말이다. 농지가 정리(arrangement)되듯 우리 의식의 저 땅 덩어리들은 보기 좋게 그리고 반듯하게 구획되어졌다.